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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NG 에서 다루는 오늘의 인물 "장미희" 님을 소개합니다.
NOMANG ISSUE
장미희
장미희
張美姬 | Jang Mi-hee |
|
본명
|
장미정(張美貞) → 장미희(張美姬)
|
출생
|
1957년 12월 8일 (64세)
|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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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67cm, 49kg, B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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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1남 2녀 중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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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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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성여자실업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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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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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종교
|
데뷔
|
1976년 영화 《성춘향전》
|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2세대 트로이카이자 70~80년대 최고의 영화 흥행 여배우로 유명하다.
정윤희, 유지인과 더불어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
미혼.
2세대 트로이카이자 70~80년대 최고의 영화 흥행 여배우로 유명하다.
정윤희, 유지인과 더불어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
미혼.
2. 활동
2.1. 데뷔 전
1958년 1월 27일 아버지 장경근, 어머니 최숙자 사이에서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아버지가 집을 나가 홀어머니 슬하에서 컸다고 한다.
어릴 때에는 장미정(張美貞)이라고 불렸다.
어린 시절애는 선머슴애였다고 한다.
그래서 축구 등의 운동을 좋아해 축구공으로 남자애의 발목을 맞혀 넘어뜨렸다고 한다.
1972년에는 예술대회에 출전하여 춘향전으로 금상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 장미희는 초등학교 교사가 장래희망이었으나, 그녀의 언니가 장미희를 강제로 출전시켜서 받은 것이라고 한다.
유년시절, 아버지가 집을 나가 홀어머니 슬하에서 컸다고 한다.
어릴 때에는 장미정(張美貞)이라고 불렸다.
어린 시절애는 선머슴애였다고 한다.
그래서 축구 등의 운동을 좋아해 축구공으로 남자애의 발목을 맞혀 넘어뜨렸다고 한다.
1972년에는 예술대회에 출전하여 춘향전으로 금상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 장미희는 초등학교 교사가 장래희망이었으나, 그녀의 언니가 장미희를 강제로 출전시켜서 받은 것이라고 한다.
2.2. 1970년대
1975년 TBC(동양방송) 특채탤런트로 뽑혔다.
이듬해인 1976년, 박태원 감독의 신인배우 공채 모집에서 276: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춘향' 역에 발탁되면서 영화 《성춘향전》에 데뷔하였다.
이듬해 1977년, 겨울여자가 5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다.
이 기록은 당시 해방 이후 역대 최다 관객 동원수였으며, 이 기록은 1990년에 상영한 장군의 아들로 깨지게 된다.
뒤이어 속 별들의 고향, 순악질 여사 등이 흥행하게 되면서 유지인, 정윤희와 함께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뒤를 잇는 여배우 신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드라마에서도 정윤희와 함께 출연한 청실홍실, 비바람 찬이슬, 찔레꽃 등이 성공하며 77년 미녀배우 순위에 정윤희의 뒤를 이어 2위의 자리에 올랐다.
.
이듬해인 1976년, 박태원 감독의 신인배우 공채 모집에서 276: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춘향' 역에 발탁되면서 영화 《성춘향전》에 데뷔하였다.
이듬해 1977년, 겨울여자가 5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다.
이 기록은 당시 해방 이후 역대 최다 관객 동원수였으며, 이 기록은 1990년에 상영한 장군의 아들로 깨지게 된다.
뒤이어 속 별들의 고향, 순악질 여사 등이 흥행하게 되면서 유지인, 정윤희와 함께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뒤를 잇는 여배우 신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드라마에서도 정윤희와 함께 출연한 청실홍실, 비바람 찬이슬, 찔레꽃 등이 성공하며 77년 미녀배우 순위에 정윤희의 뒤를 이어 2위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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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980년대
1980년 종합소득세 신고 납부액에서 8,850만 원을 신고하고 세금 1,700만 원을 납부했는데, 이는 1979년 여배우 중 최고 수입이었다.
당시에 트로이카의 일원이었던 정윤희가 1,430만원을 신고하고 세금 400만 원을 납부한 것보다 액수가 훨씬 컸다.
드라마 <아롱이 다롱이> 주연이 장미희로 낙점되었지만, 김수현 PD와의 갈등으로 촬영 하루 전에 장미희가 촬영을 취소해 김형자로 주연이 바뀌었다고 한다.
1981년에는 '취팔권 쌍팔권'에 출연하여 쿵후액션연기를 보여줬다.
4월 27일부터 9시에 만납시다의 MC로 출연하였으나 시청자의 반응이 영 별로라 9월 19일부터 김보연이 진행자를 맡았다.
장미희는 방송에 하차하면서 "영화와 드라마에 전념하겠다"고 한다.
11월 21일에 어머니 최숙희가 올해를 끝으로 은퇴한다는 장미희의 은퇴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1982년 신군부 집권 시기에 출연금지 연예인 목록에 오르면서, 1984년까지 제대로 된 드라마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이의 여파였는지 몰라도, 1982년에 여배우 수입 순위에서 정윤희와 유지인에 밀린 3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단순히 방송금지 조치만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연기공부를 위해 1982년, 1983년 2번이나 미국 유학을 갔는데, 이도 장미희의 공백기를 심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런 공백기 때문에 정부의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며, 소문의 정점은 후술할 X양 사건(.
).
그 대신 영화활동에 전념했는데, 주로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애인 등의 멜로물에 출연을 하였다.
이러한 영화는 대박까지는 아니고 중박의 성적을 내었다.
그러던 중 배창호 감독과의 만남으로 그녀의 영화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배창호가 감독을 맡은 안성기와 함께 주연을 맡은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이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적도의 꽃의 흥행 성공으로 대종상 수상을 거두게 된다.
특히 깊고 푸른 밤은 이전의 처녀 혹은 아가씨의 모습에서 벗어나 원숙미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색다른 충격을 주었다.
당시에는 애마부인으로 대표되는 에로물이 범람해 영화가 전체적으로 야해지다 보니 깊고 푸른 밤이나 적도의 꽃에서 정사장면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이 깊고 푸른 밤의 성공은 장미희의 이미지 변신이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알렸고, 다른 트로이카의 일원인 유지인과 정윤희와는 달리 이후의 방송 활동에도 탄력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황진이에 출연하였지만, 장미희의 누드를 기대했던 관람객의 기대에 못 미쳐서 흥행에 실패하였으나, 89년에 이덕화와 짝을 맞춘 '불의 나라'가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당시에 트로이카의 일원이었던 정윤희가 1,430만원을 신고하고 세금 400만 원을 납부한 것보다 액수가 훨씬 컸다.
드라마 <아롱이 다롱이> 주연이 장미희로 낙점되었지만, 김수현 PD와의 갈등으로 촬영 하루 전에 장미희가 촬영을 취소해 김형자로 주연이 바뀌었다고 한다.
1981년에는 '취팔권 쌍팔권'에 출연하여 쿵후액션연기를 보여줬다.
4월 27일부터 9시에 만납시다의 MC로 출연하였으나 시청자의 반응이 영 별로라 9월 19일부터 김보연이 진행자를 맡았다.
장미희는 방송에 하차하면서 "영화와 드라마에 전념하겠다"고 한다.
11월 21일에 어머니 최숙희가 올해를 끝으로 은퇴한다는 장미희의 은퇴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1982년 신군부 집권 시기에 출연금지 연예인 목록에 오르면서, 1984년까지 제대로 된 드라마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이의 여파였는지 몰라도, 1982년에 여배우 수입 순위에서 정윤희와 유지인에 밀린 3위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단순히 방송금지 조치만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연기공부를 위해 1982년, 1983년 2번이나 미국 유학을 갔는데, 이도 장미희의 공백기를 심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런 공백기 때문에 정부의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며, 소문의 정점은 후술할 X양 사건(.
).
그 대신 영화활동에 전념했는데, 주로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애인 등의 멜로물에 출연을 하였다.
이러한 영화는 대박까지는 아니고 중박의 성적을 내었다.
그러던 중 배창호 감독과의 만남으로 그녀의 영화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배창호가 감독을 맡은 안성기와 함께 주연을 맡은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이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적도의 꽃의 흥행 성공으로 대종상 수상을 거두게 된다.
특히 깊고 푸른 밤은 이전의 처녀 혹은 아가씨의 모습에서 벗어나 원숙미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색다른 충격을 주었다.
당시에는 애마부인으로 대표되는 에로물이 범람해 영화가 전체적으로 야해지다 보니 깊고 푸른 밤이나 적도의 꽃에서 정사장면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이 깊고 푸른 밤의 성공은 장미희의 이미지 변신이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알렸고, 다른 트로이카의 일원인 유지인과 정윤희와는 달리 이후의 방송 활동에도 탄력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황진이에 출연하였지만, 장미희의 누드를 기대했던 관람객의 기대에 못 미쳐서 흥행에 실패하였으나, 89년에 이덕화와 짝을 맞춘 '불의 나라'가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2.4. 1990년대
1990년대에도 사의 찬미 등의 영화로 인기를 유지해 갔다.
애니깽 사태로 유명한 애니깽에도 출연했지만 영화는 망했다(.
).
이 때에는 드라마 육남매로 더 알려졌다.
똑사새요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내 90년대 이전의 장미희의 활약상을 모르고 자란 세대한테 장미희 하면 이 육남매의 '똑사세요'가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배우 활동과 더불어 교육계로 진출하려는 뜻으로 명지전문대학에서 교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애니깽 사태로 유명한 애니깽에도 출연했지만 영화는 망했다(.
).
이 때에는 드라마 육남매로 더 알려졌다.
똑사새요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내 90년대 이전의 장미희의 활약상을 모르고 자란 세대한테 장미희 하면 이 육남매의 '똑사세요'가 먼저 떠오른다고 한다.
배우 활동과 더불어 교육계로 진출하려는 뜻으로 명지전문대학에서 교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2.5. 2000년대 이후
이전과는 달리 나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보다는 드라마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주로 우아한 사모님, 귀부인풍의 배역을 맡는다.
현재 2세대 트로이카 중에선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80년대 이후 은퇴한 정윤희는 말할 것도 없고 유지인 역시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연기보단 종편 예능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반면 장미희는 2010년대 후반 들어서도 연기 이외의 활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1년에 드라마 한 편은 꼭 찍고 있다.
다만 시크릿 부티크 이후로는 차기작을 정하지 않은 채 휴식기를 갖고 있다.
주로 우아한 사모님, 귀부인풍의 배역을 맡는다.
현재 2세대 트로이카 중에선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80년대 이후 은퇴한 정윤희는 말할 것도 없고 유지인 역시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연기보단 종편 예능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반면 장미희는 2010년대 후반 들어서도 연기 이외의 활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1년에 드라마 한 편은 꼭 찍고 있다.
다만 시크릿 부티크 이후로는 차기작을 정하지 않은 채 휴식기를 갖고 있다.
3. 사건사고
3.0.1. 전두환 전 대통령
X양 사건장미희의 스캔들 중에서 제일 유명한 스캔들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전두환이 장미희를 아껴 내연녀로 삼자 이에 질투한 이순자가 드라마 길을 촬영하고 있던 장미희를 납치해 자궁적출수술을 받게 하고는, 알몸 상태로 5일 동안 남자가 있는 감방에 넣었다는 내용이다.
이 스캔들이 떠오른 시기가 1980년인데, 전두환의 여성편력과 관련된 루머가 한참 나오던 때였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장미희가 미국 유학을 떠나는 등 갑자기 활동이 뜸해져 루머에 불을 지폈다.
이 스캔들이 얼마나 당시에 파장이 컸던지, 이를 영화화한 서울무지개가 1989년에 상영되어 큰 흥행을 이끌었던 적이 있다.
장미희가 82년 귀국 후 깊고 푸른 밤으로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하고 사의 찬미등의 히트작을 쏟아내며 활발히 활동하자 루머는 점차 잦아들었다.
본인도 루머에 대해 인정한 적이 없고, 종편의 연예계 뒷담화 프로에서조차 다루지 않으나 아직까지 미혼이라 유독 중노년층에서 주로 나도는 루머.
정작 귀국 직후인 83년에는 후술되는 신기수 회장과의 약혼발표가 나왔다.
전두환 정권 시절, 전두환이 장미희를 아껴 내연녀로 삼자 이에 질투한 이순자가 드라마 길을 촬영하고 있던 장미희를 납치해 자궁적출수술을 받게 하고는, 알몸 상태로 5일 동안 남자가 있는 감방에 넣었다는 내용이다.
이 스캔들이 떠오른 시기가 1980년인데, 전두환의 여성편력과 관련된 루머가 한참 나오던 때였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장미희가 미국 유학을 떠나는 등 갑자기 활동이 뜸해져 루머에 불을 지폈다.
이 스캔들이 얼마나 당시에 파장이 컸던지, 이를 영화화한 서울무지개가 1989년에 상영되어 큰 흥행을 이끌었던 적이 있다.
장미희가 82년 귀국 후 깊고 푸른 밤으로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하고 사의 찬미등의 히트작을 쏟아내며 활발히 활동하자 루머는 점차 잦아들었다.
본인도 루머에 대해 인정한 적이 없고, 종편의 연예계 뒷담화 프로에서조차 다루지 않으나 아직까지 미혼이라 유독 중노년층에서 주로 나도는 루머.
정작 귀국 직후인 83년에는 후술되는 신기수 회장과의 약혼발표가 나왔다.
3.0.2. 신기수 전 경남기업 사장
1983년 당시 경남기업 사장과 약혼했던 적이 있었다.
이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밀회를 가진 사진도 남아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밀회를 가진 사진도 남아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3.0.3. 배창호 영화감독
배창호가 장미희에게 공개구혼을 한 적이 있다.
배창호가 무명 시절 우연히 장미희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았고, 이후 감독을 맡은 배창호가 오랜 기간 장미희와 짝을 맞추는 동안 배창호가 장미희에게 연정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배창호가 무명 시절 우연히 장미희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았고, 이후 감독을 맡은 배창호가 오랜 기간 장미희와 짝을 맞추는 동안 배창호가 장미희에게 연정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3.1. 학력 위조
장충여자고등학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미국 호손대학교를 졸업하였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동국대학교 청강생에 불과했던 것.
신정아 학력 위조가 드러남에 따라 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본인은 "할말이 없다"며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구설수에 올랐다.
학력위조 문서를 참조할 것.
그러나 의외로 장미희의 학력위조 경력은 더 있다.
그녀가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협성여상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이화여고 졸업에 건국대 의상학과로 자신을 포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장미희 보고 여상 출신이라고 비아냥거린 적도 일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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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학력 위조가 드러남에 따라 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본인은 "할말이 없다"며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구설수에 올랐다.
학력위조 문서를 참조할 것.
그러나 의외로 장미희의 학력위조 경력은 더 있다.
그녀가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협성여상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이화여고 졸업에 건국대 의상학과로 자신을 포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장미희 보고 여상 출신이라고 비아냥거린 적도 일부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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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배우 본인의 고고하고 우아한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어떤 작품에 출연해도 배역 자체를 잡아먹는 경우가 많다(.
).
심지어는 홀로 가정을 꾸려나가는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이어야 할 드라마 '육남매'에서도 이런 이미지가 약간이나마 나올 지경.
장미희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선 "연기 생활이 40년 가까이 되는데도 연기의 변화가 별로 없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근데 뭐든 다 어울린다는 게 함정 일단 미모와 포스로 올킬.
전성기 때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남성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대체로 장미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신인시절부터 센스가 탁월했으며 작품을 분석하는 능력이나 연기력도 좋은 건 물론이고 베드신처럼 어려운 연기에서도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 상대배우를 배려했다고 한다.
유일하게 장미희 험담을 한 게 신성일인데, 이 배우의 인간 됨됨이나 주위평을 생각한다면.
젊은 시절부터 프로정신이 대단해서, 창문을 통해 옆 건물로 이동하거나, 눈 위에서 경주용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 등 스턴트나 대역이 필요한 위험한 연기도 직접 다 해냈다고 한다.
장미희가 성공한 데에는 이런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력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정윤희가 외모로는 압도적으로 주목받았지만, 장미희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질 정도였다고.
(정윤희와 장미희는 '청실홍실'이라는 드라마에서 라이벌 관계로 출연한 적도 있다.
)TBC 드라마 '청실홍실' (1977)평소에 패션에 관심이 많고 또 잘 입는 걸로 유명하다.
각종 명품 브랜드의 협찬 러브콜을 받는다고 하며, 최고의 명품 패션 하우스중 하나인 에르메스 마니아라고 하는데, 지금도 협찬받기 가장 어려운 에르메스에서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협찬한 첫 배우이다.
한창 남북화해 분위기가 있었던 1990년 즈음, 남북 간 연예인들끼리 만나던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이때 북한의 유명 여배우 오미란과 만났다.
1992년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남긴 "아름다운 밤이에요" 라는 수상 소감이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장미희의 성대모사를 자주 하던 이경실이 방송에서 한 말로 추정해보면 2000년대 중반부터 동부이촌동의 용산시티파크 아파트에 15년 넘게 거주하는 듯 하다.
이경실이 2009년 세바퀴에 출연할때도 같은 아파트의 자기 아랫집에 산지 몇년 됐다고 말했는데, 2021년에도 방송에서 여전히 장미희 선배님이 아랫집에 사신다고 말했다.
이경실은 자신이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아파트에 산다고 과거부터 방송에서 여러번 말했었다.
이경실의 아들이 초등학생때 장미희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고, 아들은 인사를 하며 자신이 이경실의 아들임을 밝혔다고 하는데 장미희가 조용히 "그래.
너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1년에 김근태 전 의원이 사망하였을 때, 조문 인사를 한 적이 있다.
그를 추모하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
심지어는 홀로 가정을 꾸려나가는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이어야 할 드라마 '육남매'에서도 이런 이미지가 약간이나마 나올 지경.
장미희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선 "연기 생활이 40년 가까이 되는데도 연기의 변화가 별로 없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근데 뭐든 다 어울린다는 게 함정 일단 미모와 포스로 올킬.
전성기 때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남성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대체로 장미희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신인시절부터 센스가 탁월했으며 작품을 분석하는 능력이나 연기력도 좋은 건 물론이고 베드신처럼 어려운 연기에서도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 상대배우를 배려했다고 한다.
유일하게 장미희 험담을 한 게 신성일인데, 이 배우의 인간 됨됨이나 주위평을 생각한다면.
젊은 시절부터 프로정신이 대단해서, 창문을 통해 옆 건물로 이동하거나, 눈 위에서 경주용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 등 스턴트나 대역이 필요한 위험한 연기도 직접 다 해냈다고 한다.
장미희가 성공한 데에는 이런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력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정윤희가 외모로는 압도적으로 주목받았지만, 장미희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질 정도였다고.
(정윤희와 장미희는 '청실홍실'이라는 드라마에서 라이벌 관계로 출연한 적도 있다.
)TBC 드라마 '청실홍실' (1977)평소에 패션에 관심이 많고 또 잘 입는 걸로 유명하다.
각종 명품 브랜드의 협찬 러브콜을 받는다고 하며, 최고의 명품 패션 하우스중 하나인 에르메스 마니아라고 하는데, 지금도 협찬받기 가장 어려운 에르메스에서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협찬한 첫 배우이다.
한창 남북화해 분위기가 있었던 1990년 즈음, 남북 간 연예인들끼리 만나던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이때 북한의 유명 여배우 오미란과 만났다.
1992년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남긴 "아름다운 밤이에요" 라는 수상 소감이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장미희의 성대모사를 자주 하던 이경실이 방송에서 한 말로 추정해보면 2000년대 중반부터 동부이촌동의 용산시티파크 아파트에 15년 넘게 거주하는 듯 하다.
이경실이 2009년 세바퀴에 출연할때도 같은 아파트의 자기 아랫집에 산지 몇년 됐다고 말했는데, 2021년에도 방송에서 여전히 장미희 선배님이 아랫집에 사신다고 말했다.
이경실은 자신이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아파트에 산다고 과거부터 방송에서 여러번 말했었다.
이경실의 아들이 초등학생때 장미희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고, 아들은 인사를 하며 자신이 이경실의 아들임을 밝혔다고 하는데 장미희가 조용히 "그래.
너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1년에 김근태 전 의원이 사망하였을 때, 조문 인사를 한 적이 있다.
그를 추모하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5. 출연작
5.1. 드라마
방영 연도
|
방송사
|
분류
|
제목
|
배역
|
1976년
|
동양방송 |
금요무대
|
해녀 당실이
|
당실
|
주말연속극
|
결혼행진곡
|
-
|
||
1977년
|
금요드라마
|
찔레꽃
|
-
|
|
일일연속극
|
비바람 찬이슬
|
-
|
||
주말연속극
|
청실홍실
|
한지선
|
||
1978년
|
시집갈때까지는
|
-
|
||
일일드라마
|
언약
|
-
|
||
납량특집드라마
|
천년호
|
천년묵은 여우
|
||
주간단막극
|
부부
|
갈매
|
||
개국14주년특집극
|
어머니의 강
|
-
|
||
1979년
|
주말연속극
|
사랑도 미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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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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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연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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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여인 오백년사 - 원앙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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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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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15주년특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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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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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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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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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금연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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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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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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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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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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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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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얼굴없는 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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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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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연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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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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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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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
단막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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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문학관 - 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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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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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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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
TV 문학관 - 배따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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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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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
주간연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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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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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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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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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
단막극
|
TV 문학관 - 안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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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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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
KBS 2TV |
주말연속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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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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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주
|
1989년
|
KBS 1TV |
대하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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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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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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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
MBC |
미니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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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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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남매 엄마 최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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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
주말연속극
|
엄마야 누나야
|
한영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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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SBS |
일일연속극
|
흥부네 박 터졌네
|
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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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
MBC |
미니시리즈
|
황태자의 첫사랑
|
차미희
|
2005년
|
SBS |
주말극장
|
그 여름의 태풍
|
정미령
|
2008년
|
KBS 2TV |
주말연속극
|
엄마가 뿔났다
|
고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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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
SBS |
주말특별기획
|
인생은 아름다워
|
조아라
|
2012년
|
미니시리즈
|
패션왕
|
조 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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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
MBC |
일일연속극
|
오자룡이 간다
|
장백로
|
JTBC |
주말연속극
|
맏이
|
윤이실
|
|
2014년
|
일일연속극
|
귀부인
|
홍선주
|
|
MBC |
주말연속극
|
장미빛 연인들
|
고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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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
KBS 2TV |
수목드라마
|
착하지 않은 여자들
|
장모란
|
2016년
|
JTBC |
금토드라마
|
마담 앙트완
|
배미란
|
2017년
|
KBS 2TV |
수목드라마
|
흑기사
|
장백희
|
2018년
|
주말연속극
|
같이 살래요
|
이미연
|
|
2019년
|
SBS |
수목드라마
|
시크릿 부티크
|
김여옥
|
5.2. 영화
연도
|
제목
|
배역
|
관객 수
|
1976
|
성춘향전
|
성춘향 역
|
17,281명
|
1977
|
겨울여자
|
이화 역
|
585,775명
|
1978
|
갯마을
|
해순 역
|
138,856명
|
속 별들의 고향
|
수경 역
|
327,736명
|
|
1979
|
순악질 여사
|
민공희 역
|
68,925명
|
나팔수
|
해수 역
|
33,997명
|
|
느미
|
느미 역
|
46,782명
|
|
야시
|
해수 역
|
101,083명
|
|
1980
|
색깔있는 여자
|
윤시내 역
|
90,388명
|
겨울 사랑
|
다혜 역
|
44,792명
|
|
겨울에 내리는 봄비
|
11,535명
|
||
그 여자 사람잡네
|
70,113명
|
||
내가 버린 여자 2
|
윤정 역
|
36,713명
|
|
바다로 간 여자
|
|||
불새
|
현주 역
|
87,209명
|
|
1981
|
김두한형 시라소니형
|
33,537명
|
|
취팔권 광팔권
|
28,072명
|
||
슬픈 계절에 만나요
|
민설희 역
|
23,405명
|
|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
창녀 역
|
60,972명
|
|
1982
|
애인
|
영심 역
|
73,279명
|
숲속의 바보
|
꽃분 역
|
23,332명
|
|
1983
|
적도의 꽃
|
선영 역
|
155,042명
|
사랑 그리고 이별
|
윤희 역
|
||
1985
|
깊고 푸른 밤
|
제인 역
|
495,697명
|
1986
|
황진이
|
황진이 역
|
89,193명
|
1988
|
성야
|
세원 역
|
18,872명
|
1989
|
불의 나라
|
정은하 역
|
117,789명
|
1991
|
사의 찬미
|
윤심덕 역
|
183,760명
|
1995
|
애니깽
|
국희 역
|
|
1997
|
아버지
|
영신 역
|
|
1998
|
까
|
시상식 장면 역
|
|
2003
|
보리울의 여름
|
원장 수녀 역
|
|
2008
|
비몽
|
의사 역
|
|
2016
|
클레어의 카메라
|
남양혜 역
|
5.3. 광고
- 1975년 해태제과 맛동산
- 2008년 LG OZ - '오주상사'라는 가상의 회사를 배경으로 만든 연작광고에서 팀장 역할로 나왔다. 이 때 부하직원이 이문식이다.
- 2010년 CJ제일제당 백설유 쌀눈유
- 2014년 KT GiGA 인터넷
- 2018년 네이처셀 닥터 쥬크르
5.4. 방송
- 1981년 4월 27일 ~ 9월 19일 9시에 만납시다 : MC 출연
6. 수상 내역
연도
|
시상식
|
부문
|
작품
|
1976년
|
TBC 연기대상
|
신인상
|
해녀 당실이
|
제11회 핑크리본상
|
신인상
|
||
1977년
|
은곰상
|
여우주연상
|
겨울 여자
|
TBC 연기대상
|
인기상
|
찔레꽃, 비바람 찬이슬, 청실홍실
|
|
1978년
|
TBC 연기대상
|
최우수 여자연기상
|
어머니의 강
|
1980년
|
제1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여우주연상
|
느미
|
1981년
|
제17회 한국 연극 영화 예술상
|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TV 문학관 - 을화
|
1983년
|
제22회 대종상
|
여우주연상
|
적도의 꽃
|
1990년
|
제26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
불의 나라
|
1991년
|
제12회 청룡영화상
|
여우주연상
|
사의 찬미
|
제2회 춘사대상영화제
|
|||
1992년
|
제30회 대종상
|
||
제37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
|||
제16회 황금촬영상
|
인기여우상
|
||
2008년
|
제1회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
대상
|
|
제25회 코리아스완베스트드레서 탤런트부문
|
백조상
|
||
KBS 연기대상
|
여자 인기상
|
엄마가 뿔났다
|
|
베스트커플상(with 김용건)
|
|||
2012년
|
제49회 저축의 날
|
금융위원장 표창
|
|
2017년
|
제37회 황금촬영상
|
공로상
|
|
2018년
|
KBS 연기대상
|
여자 최우수연기상
|
같이 살래요
|
베스트커플상(with 유동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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